[한류타임즈 함상범 기자] 친한 친구나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일수록 생채기를 내는 경우가 많다. 곱게 나갈 말도 괜히 더 짜증을 덧붙여서 던지게 된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것도 굳이 시비 걸듯 말하게 되고, 부탁하는 중에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가족이라서 이해하지만, 가족이라서 더 아플 때도 있다.

때론 가족 간에도 서열이 발생한다. 대체로 부모의 서열이 높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식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 부모가 눈치를 보는 경우가 생긴다. 어렸을 적 충분히 사랑을 줬으면 화기애애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어른이 되고도 채우지 못한 결핍이 짜증과 분노가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영화 ‘카시오페아’ 속 ‘수진’(서현진 분)과 그의 부친인 ‘인우’(안성기 분)의 관계가 그렇다. 수진이 어릴 적 오랜 해외 업무로 인해 사랑을 주지 못한 아버지 인우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산다. 딸이 부탁하는 것이면 어떻게든 빨리 들어주려고 하고, 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크게 도움 준 것도 없는데 스스로 사시를 공부하고, 로펌 변호사가 된 딸이 고맙기만 하다. 

수진은 이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짜증 내기 일쑤다. 딸 ‘지나’(주예림 분)를 돌봐달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밥은 식탁에서 먹어야 하고 만화도 못 보게 하는 기준이 있다. 조금만 거슬려도 사나운 눈빛으로 쏘아붙인다. 지나에게도 꽤 모진 편이다. 사이가 틀어진 건 아닌데, 보고 있으면 불안하다. 성격 좋은 지나가 잘 받아들이는 편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남편은 미국에 있다. 지나는 엄마를 떠나 미국으로 갔다. 수진이 업무에 더 충실하기 위해 딸을 미국으로 보낸 것이다. 지나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진은 기억력이 흐릿해진다. 판단이 서지 않는다. 걷잡을 수 없이 감정이 출렁댄다. 운전 중에 감정이 터진다. 그러다 사고가 난다. 신체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다른 곳이 심각하다. 알츠하이머란다. 게다가 초로성 치매라고 한다. 초로성 치매는 일반적인 치매보다 진행 속도가 훨씬 빠르다. 3개월이면 지능을 잃는다. 수진 옆에 도울 사람은 인우 뿐이다. 인우는 지극정성으로 딸을 키운다. 이른바 리버스 육아다. 

 

수진을 화자로 이야기를 끌어가던 ‘카시오페아’는 수진의 치매 증상이 심각해지면서 화자가 인우로 바뀐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것에 불안 증세가 극심해지는 수진을 진정시키고, 밥을 해먹이며 씻기기도 한다. 기업의 이익을 법적으로 대변해주던 능력 있던 변호사였던 수진은 어느덧 미취학 아동 수준으로 변모한다. 그러한 수진에게 온몸으로 헌신하는 인우의 모습이 ‘카시오페아’가 던지는 메시지다. 가족의 소중함이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유발하는 사연을 그린 작품은 적지 않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투명인간 최장수’, ‘바람이 분다’ 등이 있다. ‘카시오페아’가 특별함을 갖는 건 부성애에 있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배우 안성기의 얼굴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익숙한 이야기인 ‘카시오페아’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서현진과 안성기다. 뻔할 수 있는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특히 서현진은 까칠하고 고집스러운 변호사에서 아이처럼 변해가는 과정의 수진을 훌륭히 표현한다. 기억을 잃기 전 엄청난 감정 기복을 드러내는 장면이나, 갑작스럽게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 군중 앞에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수치를 느끼는 부분 등 연기하기 어려운 장면임에도 관객의 몰입을 이끈다. 

 

그런 수진을 지그시 바라보는 인우를 맡은 안성기는 안정감을 준다. 수진이 느끼는 고통을 책임지려 하는 그의 눈이 꼭 우리네 아버지들의 그것 같다. 특별히 도드라지는 감정 연기는 없지만, 매 순간 흐르는 감정의 물줄기를 자연스레 끌고 간다. 안성기의 내공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영화 ‘우리들’ 이후 아역 배우를 발굴하는 데 국내 최고로 평가받는 윤가은 감독이 직접 추천한 주예림도 빛나는 연기자다. 엄마보다 더 어른스러운 지나의 내면을 아이가 가진 순수함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잠깐 스쳐가는 코믹 연기는 물론 감정 신까지 뛰어나다.

누구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인간의 의지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릴 수 있다. 누구도 그 삶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결국, 남는 건 가족이다. 가족만이 모든 아픔을 대신 감싸준다. 그런 가족에게 혹여 아픈 말을 남기고 있진 않나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카시오페아’의 엔딩을 보고 나면 괜히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 인사를 묻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여운이 깊다. 

사진=(주)트리플픽쳐스

함상범 기자 intellybeas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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