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타임즈 함상범 기자] 이정은은 어릴 적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대신 할머니 손에 자랐다. 부모님이 놀아주지 않은 공백을 달래는 방법은 인형을 만들고 혼자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에 가 촌극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오빠 옷을 빌려 사람들 앞에서 연기했다. 그게 그렇게 재밌었다고 한다. 

“지금도 연기는 재밌거든요. 커서는 재미뿐 아니라 책임감도 커지잖아요. 그 책임을 이겨내는 재미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이든 주어진 연기를 잘 해냈을 때의 희열이 있죠”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연출을 전공할 때에도 이정은의 꿈은 배우였다. 남들이 써주지 않아서 연출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마음 한 켠에는 배우를 꿈꾸고 있었다. 당시 권해효, 설경구와 같은 배우들은 외부 작품을 하고 다니는 걸 이정은은 보고만 있었다. 

“설경구, 권해효 등등 워낙 출중한 배우들이 많았죠. 연기 측면에서 배울 것도 많았고요. 저는 정신연령이 좀 어린 편이었어요. 4학년 때 이미 밖의 작품을 했으니까요. 활개를 치고 다니는 모습을 부러워했죠. 저도 날아다니고 싶은데 기능적으로 모자랐어요”

언제나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그에게도 흑역사는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영화 ‘와니와 준하’다. 극 중 프로듀서로 나오는 이정은은 “교과서 읽듯이 연기했다”고 자평했다. 연극계에서는 꽤 실력파로 알려진 그가 카메라 연기는 매우 부족했다고 한다. 

“후배들이 진짜 좋아해요. 그 장면 얘기하면요. 감독이 저한테 힘을 주려고 했는데, 제가 자리를 못 잡았죠. 필름 카메라가 워낙 커서 위압감도 컸고요.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연기했어요. 그리고는 무대만 했어요. 한참 무대만 하다가 독립영화로 실험을 해보고 매체로 넘어왔어요”

100명에 가까운 스태프 앞에서 인물에 몰입해 연기를 펼쳐 보이는 것은 적당한 배포로는 쉽지 않은 일일 테다. 혼자서 동떨어진 감정을 갖고 주목을 받으며 연기를 펼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관객의 눈을 보는 것이 어쩌면 연기하기는 데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연극 무대에서 충분히 내공을 쌓았다고 생각한 이정은은 ‘와니와 준하’에서 이른바 박살이 났다. 충격도 컸고, 배우의 자존심에도 타격이 컸다.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연기를 이어갔지만, 상처가 쉽게 아물지는 않았다. 

“‘와니와 준하’ 찍고 뒤늦게 깨달은 게 있어요. 잘하고 싶은 목표가 있었죠. 열심히도 했고요. 그런데도 연기를 이상하게 했는데, 집중력이 문제였던 거예요. 상황을 생각해야 하는데 ‘친구가 찍고 있다’ ‘누가 보고 있다’와 같은 엄한 곳에 신경을 쓰니까 집중을 못 한 거예요. 작은 영화를 찍으면서 알았어요. 그걸 아는 순간 ‘영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를 좋아했거든요. 그래도 한참을 안 했다가 뒤늦게 문제를 알고 뛰어든 거예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배우는 인기의 척도에 따라 시나리오를 고를 때의 상황이 달라진다. 하나라도 들어오면 감지덕지인 무명시절을 거쳐 충무로의 모든 시나리오를 읽을 기회를 얻는다. 약 2년 동안의 스케줄이 꽉 찰 때도 있다. 워낙 공급이 많아지는 경우에는 선택과 거절 사이에서 결정을 해야 한다. 

“저도 선택을 많이 하는 편이죠. 대체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어떤 한순간이 스쳐 지나가면 선택을 하는 편이에요. 인물이 이해 간다거나, 배경이 좋아도 마음이 가요. 아니면 어떤 섬에 아이들이 많이 나오거나 하면 그 작품은 선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반대로 중요한 역할이어도 겹치는 작품은 피하려 해요. 사람들 머리가 다 비슷한지 한동안은 ‘보이스 피싱’ 관련 드라마만 들어오더라고요. 희생당하는 중년 여인으로요. 그럴 땐 굳이 내가 할 필요를 못 느껴요. 이야의 겹침이 있을 땐 거절하는 편이죠”

과거와 미래, 가난과 부, 무지와 엘리트, 선과 악을 오가는 스펙트럼을 갖는 중에도 여전히 캐릭터는 목마르다. 더 다양하고 더 재밌는 역할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은 누그러질지 모른다. 이정은에게도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 

“저는 이야기에서 삶의 동력을 얻어요. 제가 운동권 출신이라 그런지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이든 사람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흥미가 있죠. 아무리 우주적인 이야기더라도 사람이 중심이어야 해요. 그러면 좋아져요. 개인적으론 독립운동가를 해보고 싶어요. 고문당하고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중에 과연 ‘나는 한마디도 안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거든요. 또 한편으로 형사물도 찍고 싶어요. 멋있게 총을 쏴보고도 싶어요”

사진=준필름

함상범 기자 intellybeast@daum.net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한류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