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정의롭고 강단 있는 여성의 이미지가 구축됐다. 위계나 서열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옳은 말을 하는 모습이 어울린다. 때론 발칙한 언어를 마음껏 구사해도 박은빈이니까 귀엽고 매력 있게 전달된다. 귀여운 아역으로 시작해 각종 드라마의 주인공을 꿰찬 박은빈은 정의로운 여성으로 성장했다. 

그런 박은빈이 꼭 필요했던 건 ‘마녀2’다. 마녀프로젝트에서 완성형 존재로 만들어진 ‘소녀’(신시아 분)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소녀를 알려주는 서사를 끌고 가는 인물은 박은빈이 맡은 ‘경희’다. 모두가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에 반해 경희는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비현실성이 가득한 영화에 현실성을 부여할 수 있는 연기자가 필요했다. 박은빈이 적격이었다.

엄청난 능력자들 사이에서 평범한 인물이야말로 더욱 특별하다는 박훈정 감독의 말에 동의한 박은빈은 신작 ‘마녀2’에 합류했다. 그리고 ‘마녀2’ 전반의 화자로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눈에 띄는 명장면은 없지만, 영화가 우리 옆에 존재하는 현실감을 불어넣어주는 데 일조한다. 어쩌면 감독이 배우에게 빚을 질만한 역할인데, 충실하고 훌륭하게 소화한다. 

그런 가운데 박은빈이 지난 17일 한류타임스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예의 바른 꼬맹이’에서 이제는 어엿한 배우로 성장한 박은빈의 속내를 들어봤다. 

 

박은빈은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촬영 중이다. 워낙 바쁜 일정 탓에 공식 홍보 행사는 물론 언론시사회도 참석하지 못했다. 취재진 인터뷰도 가장 늦은 시간에 했다. 영화도 인터뷰 전날인 16일 저녁에 일반 관객들과 함께 봤다고 한다. 

“제가 스크린에 나올 때 긴장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관계자분들도 아니고 일반 관객과 호흡한다고 생각하니까, 마냥 즐기면서 볼 수 없었어요. 끝나고 후기 영상을 보지 않고 가시는 분들도 있어서, 붙잡고 싶었어요. 그러진 못했지만요. 다들 동행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용이 정말 궁금하더라고요”

박은빈이 맡은 경희는 ‘마녀’ 시리즈 내에서 유일한 절대 선이다. 올바른 생각과 마음가짐, 언행을 한다. 타인을 돕는 마음도 있고, 가까운 사람을 지극정성으로 챙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죽이는 것이 매우 당연한 ‘마녀’ 세계관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에 가깝다. 

“제 친구 중 한 명은 잔인한 영화를 못 봐요. 액션도 그렇고요. 그 친구 말로는 제가 천사여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하네요. 경희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착한 본성을 가진 인물이에요. 존중할만한 사람이죠. 그런 상황에서 도덕적인 자아를 유지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닌 것 같아요. 악한 본성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하잖아요”

경희는 ‘용두’(진구 분)와 갈등이 깊다. 조직 보스였던 경희의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조직원 용두는 아버지를 해한 인물이다. 금전적인 문제로 경희를 압박한다. 경희 역시 쉽게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그런 중에 경희에게 고마움을 느낀 소녀가 용두 집단을 파괴한다. 그리고 다시 용두 집단은 경희를 찾아와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려 한다. 

“어쩌면 제 캐릭터를 보고 답답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녀2’의 액션을 보고 싶은 관객이 많을 텐데 저는 반대되는 장면이 많아서요. 관객은 싸우길 원하는데 경희는 폭력을 싫어하죠. 저는 경희가 완전하지 않은 어른이지만, 그래도 소녀와 동생 ‘대길’(성유빈 분)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연기했어요.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세 보이려는 앙칼짐 정도만 표현했던 것 같아요. 두려움을 잘 아는 어른이 된 것 같아요”

 

경희는 화려한 액션도 없고 진한 감정신도 없다. 분량과 비중은 큰 편이지만, 소위 ‘따 먹는 장면’이 없다.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다. 배우들이 썩 좋아할만한 캐릭터는 아니다. 박훈정 감독에게 캐스팅에 있어 가장 난관인 인물이다. 박은빈은 캐릭터보다 감독의 신뢰로 작품에 참여했다. 

“감독님과 미팅 때 ‘저는 능력이 없나요’라고 물어봤었어요. 감독님이 능력자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가장 인간다운 사람이 특별할 것이라고 해주셨고, 유인당했어요. 그 신뢰로 ‘마녀’ 시리즈에 들어왔어요. 초현실적인 이야기라, 현실에 발을 붙일만한 인물이 필요한데 저를 안정감 있게 연기해줄 사람이라고 말해주셨어요. 붕 뜰 수 있는 부분에 무게추를 다는 인물이죠. 시사회 끝나고 ‘지면에 발을 닿게 해줘서 고맙다’고 해주셨어요. 영화를 못 본 상태였는데, 엄청난 극찬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대부분 배우는 작품을 선택할 때 대부분 시나리오와 연출진, 캐릭터를 보고 결정한다. 얼마나 재밌느냐, 얼마나 신뢰가 가는 사람과 일하느냐,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이냐를 따진다. 박은빈 역시 이러한 대목을 충분히 고려하지만 가장 의미있게 생각한 건 작품의 메시지다. 이야기가 가진 사회적 올바름이 꽤 중요한 고려대상이었다. 하지만 ‘마녀2’는 사실상 메시지가 없는 작품이다. 

“보고 끝나는 작품보다는 제 자신에게도 의미가 남을 수 있는 이야기를 원해요.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을 좋아해요. 그런데 작품은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마녀2’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징검다리의 느낌이 강하잖아요. 그저 ‘마녀’ 시리즈에 참여하는 게 큰 의미였어요. KBS2 ‘연모’ 준비하는 시기에 알맞게 촬영할 수 있었던 거죠. 영화 현장을 느껴보고 싶기도 했고요”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아동복 모델로 출발해 각종 드라마 현장을 오고 간 경험자다. 누구보다도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배우다. 아는 것이 많다는 건 참아야 하는 것도 많다는 걸 의미한다. 수백명이 협업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드라마 특성상 배우에게 책임감과 인내심은 필수적인 요소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현장에 있을 때 칭찬받는 재미로 있었어요. 예의바른 꼬맹이였던 것 같아요. 산만하지도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연기했죠. 현장 상황이 늘 최고는 아니니까 그 속에서 기다리고 인내하는 법을 배웠어요. 책임감은 더 커졌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협업하는 공간에서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요. 작품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만큼 책임감도 커졌어요”

박은빈은 곧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대중과 만난다. 타이틀롤 우영우를 맡았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신입 변호사다. SBS ‘스토브리그’, ‘연모’처럼 또 한 번 인생 캐릭터를 경신할 준비 중이다.

“저는 작품으로 제 나이를 기억해요. 작년은 ‘연모’와 ‘마녀2’, 올해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될 것 같아요. 행복하게 촬영했고, 새로운 재미를 줄 거라 믿고 있어요. 드라마가 끝나면 한 동안 휴식을 할 계획입니다. ‘스토브리그’ 이후로 쉰 적이 없거든요. 재충전 하려고요. 그리고 다시 멋있게 연기할게요”

사진=NEW

함상범 기자 hsb@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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